현직 문유석판사가 쓴 전국의 부장들에게 드리는 글 전문..."아프니까 갱년기다..."
[문유석판사 글 전문]
새해 첫 칼럼이다. 거창하기만 한 흰소리 말고 쓸모있는 글로 시작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부장직함을 달고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포함한 전국 다양한 직장의 부장님들 및 이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 명심할 것들을 적어보겠다. 경어체가 아님을 용서하시라.
저녁 회식 하지마라. 젊은 직원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돈 있다. 친구도 있다. 없는 건 당신이 뺏고 있는 시간뿐이다. 할 얘기 있으면 업무시간에 해라. 괜히 술잔 주며 "우리가 남이가"하지마라. 남이다.
존중해라. 법 먹으면서 소화 안되게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자유롭게들 해 봐" 하지마라. 자유로운 관계 아닌 거 서로 알잖나. 필요하면 구체적인 질문을 해라. 젊은 세대와 어울리고 싶다며 당신이 인사고과하는 이들과 친해지려고 하지 마라. 당신을 동네 아저씨로 무심히 보는 문화센터나 인터넷 동호회의 젊은이를 찾아봐라. 뭘 자꾸 하려고만 하지말고 힘을 가진 사람은 뭔가를 하지않음으로써 뭔가를 할 수도 있다는 점도 명심해라.
부하직원의 실수를 발견하면 알려주되 잔소리는 덧붙이지 마라. 당신이 실수를 발견한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위축돼 있다. 실수가 반복되면 정식으로 지적하되 실수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인격에 대해 얘기하지 마라. 상사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처음부터 찰떡같이 말하면 될 것을 굳이 개떡같이 말해 놓고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니 이 무슨 개떡같은 소리란 말인가.
술자리에서 여직원을 은근슬쩍 만지고는 술 핑계 대지마라. 취해서 사장 뺨 때린 전과가 있다면 인정한다. 굳이 미모의 직원 집에 데려다 준다고 나서지 마라. 요즘 카카오택시 잘만 온다. 부하 여직원의 상사에 대한 의례적 미소를 곡해하지 마라. 그게 정 어려우면 도깨비 공유 이동욱을 유심히 본 후 욕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는 요법을 추천한다. 내 인생에 이런 감정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용기 내지 마라. 제발,제발 용기 내지마라.
"내가 누군 줄 알아" 하지마라. 자아는 스스로 탐구해라. "우리 때는 말야" 하지마라. 당신 때였으니까 그 학점 그 스펙을로 취업한 거다. 정초부터 가혹한 소리 한다고 투덜대지 마라. 아프니까 갱년기다. 무엇보다 아직 아무것도 망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하려면 이미 뭔가를 망치고 있는 이들에게 해라, 꼰대질은, 꼰대들에게 .
본문출처: 중앙일보 오피니언 http://news.joins.com/article/2110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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